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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도너스/2019 코리아 랜도너스

2019 코리아1200 랜도너스 1편

by 벨로민턴 2020. 3. 11.

브레베 종류 : 코리아 1200KM 브레베 (획득고도 14,437m)

출발시각 : 2019.06.06. / AM05:00

완주시간 : 86h. 4min.

자전거 : Addict10 (2015) + Dynamo front wheel

 

스트라바 로그 보기 (이미지 클릭)

 

▲ 고도표와 CP 정보

공시생활을 청산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그랜드 랜도너스. 드디어 내게도 그 기회가 찾아왔다. 소방공무원이 되면 나흘을 내리 쉬어야 하는 그랜드 랜도너스는 꿈도 못꿀 것 같아 절실한 마음으로 참가하게 됐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짐정리였다. 랜도너스를 뛰면서 아직까지 비를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데 전국적으로 폭우가 올 것이 예상 됐기에 우중 라이딩 준비를 해야했다. 광주600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준비물에 헬멧 커버와 레인자켓 정도만 추가하고 젖은 몸을 닦을 수 있게 가볍고 빨리 마르는 스포츠 타올도 챙겼다. 그리고 상주(CP6, CP11)에서 이용 가능한 드랍백 서비스가 있어 그곳에서 갈아 입을 빕과 저지를 한 벌씩 더 챙겼다.

▲ 준비물

위 준비물 중, 후리카케, 스포츠 타올, 바람막이, 긴 장갑, 바세린, 타올, 이 여섯가지 아이템은 완주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차후에 짐을 줄일 여지가 많이 보인다.

▲ 야간 다운힐을 위한 추가 라이트 세팅
▲ 가민의 상태가 좋지 않아 평소에 궁금했던 와후 볼트를 친구에게 빌려 참가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 로그가 날아갈지 모르므로 이번에도 역시 가민 피닉스를 보조 기록장치로 사용했다.
▲ 자전거 세팅 완료. TT바를 처음 달고 갔는데 멀티 포지셔닝이 가능해 몸에 부담이 적었다.
▲ 엄마 차를 빌리기로 해서 미리 뒷자석에 실어놨다.

브레베가 열리기 하루 전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도 삼가고 식후에 쏟아지는 졸음도 참아가며 오로지 밤 9시에 잠들기 위해 나름 공략 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진 못했다. 친구가 응원차 커피와 디저트를 산다고 해서 저녁에 스타벅스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딱히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잠이 안오거나 하는 체질은 아닌데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랜드 랜도너스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 도통 잠이 오지 않게 된 것이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차라리 일찍 광주로 이동해 남는 시간에 차에서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씻고 행동에 옮겼다. 

▲친구가 응원차 사준 아메리카노와 당근 케이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간장 계란밥을 만들어 먹고 새벽 3시쯤에 집을 나섰다. 광주에 도착하니 체크인 시작 시간인 오전 4시가 됐다. 일찍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면책동의서 작성, 브레베 카드 수령, 검차를 물 흐르 듯 마치고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돼 있는 박카스도 바로 뚜껑을 따 들이켜 마셨다. 드랍백까지 맡기고 나니 출발 전에 할 일은 얼추 끝난 듯 했다. 30분 만이라도 자고 가려고 차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갑자기 일본어가 귓가에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몇 걸음 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남녀 한 쌍이 어둡고 외진 곳에서 일본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풍채와 차림새를 보니 일본인이라는 것을 곧 확신할 수 있었다. 졸업하고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일본어 전공자인데 용기내어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혹시 일본에서 오셨나요? 그랜드 참가하시는 건가요??」

「네. 그러려고 도쿄에서 왔는데 코리아 랜도너스 측에서 편의를 많이 봐주셨어요.」

「와. 대단하네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마 기댈 일이 많을지도 몰라요~」

이후 서로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하고 몇 마디 더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3박 4일이나 되는 제법 긴 여정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 줄 알았는데 출발지에서 본 그들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치 못했다. 일본 브레베 참가자 중에는 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천천히 오래 달리는 스타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반대로 첫째 날부터 성냥을 불태우며 거리를 줄여갔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래도 출발지에서 보니 일본어 화자가 나 이외에도 몇 명 더 있어 안심이 됐다. 딱히 일본어 화자가 아니더라도 랜도너 중엔 친절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영어로든 제스처로든 충분히 의사소통을 취하며 도움을 줬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모로 특별취급을 해주었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아 아마 코리아 랜도너스 측에서도 그들의 참가를 적극 돕고 환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워낙 원칙주의라 엔트리 시트 작성 단계에서부터 굉장히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갔으면 했다.

▲ 코리아 랜도너스 1200 START

그러고보니 그 일본인 참가자(Mr. 토모미)에게 간식으로 가져온 바나나를 건네고 얘기도 좀 나누다보니 잠 잘 시간이 애매해져 버렸다. 괜히 잠깐 눈을 붙였다가 더 피곤해질 바에야 그냥 안자고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같이 팩을 꾸리기로 했던 칼로리폭탄님을 찾아 합류했다.

주최 측의 주의사항을 듣고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일제히 출발했다. 역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출발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새벽 바람이 차갑게 피부에 닿자 곧 기억이 났다.

「어어..? 장갑이 없네.」

생각해보니 차에서 선크림을 바르기 위해 장갑을 잠깐 벗었는데 그대로 두고 내린 것이었다. 어짜피 비가 온다고 했으니 장갑을 껴봤자 젖으면 찝찝할테고 그냥 없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유턴은 하지 않았다. 만약 유턴을 했다면 최후미에서 홀로 눈물범벅 라이딩을 했을 것이다.

 

지난 광주600에서 칼로리폭탄님이 1200을 언급하며 이와같이 예상한 바가 있다.

「1,200km나 되는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천상계 랜도너들도 첫날이라고 해서 그렇게 무리하진 않을 것이다. 오동도(최정상 랜도너)님 팩을 타고 가자.」

이에 나도 동의했다. 일단 상급 랜도너의 팩을 타면 길을 헤멜 걱정이 없어 건강한 멘탈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따라다닐 만한 체력이 있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오동도님 팩은 광주600에서 터프한 주행으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연대보증 팀보다 페이스가 소폭 빠른 듯 했다. 이러다 나중에 퍼지는 게 아닐지 영 불안했지만 일단 붙어 가보기로 했다.

다행이 첫날은 바람이 도와주어 CP1인 담양댐 인증센터에 굉장히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많은 인원이 CP1에 동시에 도착했는데 빠져나가는 속도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과연 베테랑 들이다. 여기서 키가 큰 훤칠한 랜도너 한 분이 스템프가 있는 부스에 들어가 도맡아 도장을 찍어 회전율을 높여준 덕분에 CP1에서의 병목 현상이 실타레처럼 훌훌 풀렸다.

▲ CP1 도착 직전에 갑자기 페이스가 빨라졌는데 알고보니 도장을 빨리 찍고 빠져나가기 위한 배테랑 랜도너들의 눈치게임이었던 것.

도장을 찍고 잠깐 엉기적엉기적 했는데 선두그룹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컥! 칼로리폭탄님과 부랴부랴 추격을 시작했다. 나는 업힐을 만나면 몸에 힘이 솓는 타입인데, 다행이 인증센터 바로 뒤로 업힐이 시작돼 오동도님 팩에 다시 붙을 수 있었다.

팩 후미에 붙어 다시 마음의 평온함을 찾고 적당한 페이스로 CP2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낙차 사고를 눈 앞에서 목격했다. 터널 옆으로 빠져야 하는데 앞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주춤주춤 유턴 하려던 랜도너끼리 접촉 사고가 난 것이다. 속도가 낮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자리 꽈당(클빠링)을 해도 아프던데 괜찮을는지 걱정됐다. 가민을 고정시키는 마운트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지만 한 랜도너가 절연 테이프를 꺼내 칭칭 감아 고정 시키는 것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절연 테이프를 챙겨온다고?? 의아했지만 이에 대한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뒤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낙차 사고를 수습하는 사이에 몇몇 그룹이 지나갔는데 그 중에 연대보증 팀이 섞여 있었다. 얼마 전에 광주600에서 보고 다시 만나니 매우 반가웠다. 연대보증 팀은 조은성 형님의 유니크한 붉은 헬멧 덕에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업힐 구간에서 은성님 옆에 따라붙어 광주 600때 연대보증 팀을 따라다니며 신세를 졌다며 그때 못한 감사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 무릉도원 터널을 지나가는데 아래와 같은 썰이 생각나 잠시 피식했다.

 

▲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디파쳐님(캐논데일)과 칼로리폭탄님(스페셜라이즈드).
▲ 업힐에서는 때로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뒤따라가며 담양의 자연을 만끽했다. (날라간거 아님)

다음 CP를 향해 가는 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로 인해 화장실을 더 자주 가게되는 듯 하다. 그런데 장장 100km를 넘게 달려왔는데 선두 그룹 사람들은 같은 인간인가 싶었다. 단 한번도 화장실을 들르지 않고 쉴 새 없이 페달을 돌려 이곳까지 왔다. 어떡해야 할지 고심하던 중 지난 광주600 때 함께 했던 정영기 사장님과의 일이 떠올랐다.

업힐이 시작됐는데 팩을 저 뒤로 보내버릴 정도의 페이스로 올라가셔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나 버리고 가지 마세유..) 사장님께서는 위에 먼저 가서 볼일 좀 보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옳치 이거구나 싶었다. 일단 정차 후 볼 일을 보고 뒤쫒아 갈지, 먼저 올라가서 일을 마치고 팩을 기다렸다 합류할 지 택 1의 상황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심적으로 더 편안했기 때문에 비교적 거리를 벌리기 쉬운 업힐 구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처음 써본 와후 속도계는 업힐이 시작되면 고도표와 남은 거리를 띄워주는 좋은 기능을 갖고 있어, 어느 부분에서 속도를 올려 가야 할 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속도계의 화면을 주시하다 조금 긴 업힐이 나오자마자 칼로리폭탄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먼저 정상에 올라가 용무를 마쳤다. 물티슈를 꺼내 서둘러 손을 닦고 있었는데 그세 사람들이 올라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내려 갈게요오오」라는 메아리를 남기고 떠나가버린 칼로리폭탄님을 쫒아 나도 부랴부랴 자전거에 올라 다운힐을 시작했다. 고작 30초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그룹에 붙는 데 5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운힐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었으니, 합류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CP2에 도착했다는 점이었다. 괜한 힘을 쓴 것 같아 허탈함이 느껴졌다. 기존에 쓰던 가민은 CP를 Way point로 지정해 오면 다음 CP까지의 남은 거리를 알려줘 편했는데, 친구에게 빌린 와후에서는 그러한 기능을 찾지 못해 발생한 상황이었다. 물론 내가 모르는 것일 뿐 비슷한 기능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

▲ CP2 도착. 아쉽게도 푸른 바다는 볼 수 없었지만 선선하니 달리기엔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CP2에 도착하니 물과 바나나, 그리고 조그마니 귀여운 하리보 미니팩이 보급식으로 준비돼 있었다. 달리면서 먹는 행동식으로 하리보를 굉장히 선호하는데 보급식으로 나오니 엄청 반가웠다. 부족한 물을 채우고 바나나를 먹으며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오도동님은 벌써 출발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읍읍으읍읍..」 입에 들어간 바나나에 목구멍이 막히기 시작했다. 출발이 너무 빠른 것 같아 따라가야 할지 말지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칼로리폭탄님의 얼굴을 보니 따라가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아니, 따라가야만 한다는 눈치이다. 서둘러 준비하고 출발했으나 이미 오동도님이 떠나고 2~3분이 흐른 뒤였다.

CP2를 나서자마자 해안가를 따라 짧은 업다운과 헤어핀이 반복 돼 추격하는 입장에선 손에 땀을 쥐게했다. 멀리서라도 앞 그룹의 모습이 보이면 파워를 불태워 따라 잡을지, 아니면 포기할지 쉽게 결정할 터인데 꼬불길이라 「이 헤어핀을 돌면 보일까? → 없네 → 그럼 저 헤어핀을 넘으면? → 없구나」 이와 같은 희망고문만 계속됐다. 높은 페이스를 오랫동안 유지했지만 끝내 선두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체력 온존을 위해 페이스를 낮추기로 칼로리폭탄님과 협의했다. 조금 더 나아가자 쭉 뻗은 새만금방조제가 왼쪽 시야에 들어왔다. 굉장한 길이의 직선 주로였다. 그런데! 새만금방조제에 막 진입하는 오동도님의 팩이 개미만한 사이즈로 보이는 것이었다. 영혼을 불태우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였다. 칼로리폭탄님께 「잘하면 붙을 수 있을 것 같으니 힘 좀 써볼게요!」라며 호기롭게 앞으로 뛰쳐나갔는데 속도계가 울린다.

『경로이탈』

초행길이기 때문에 좀더 주의해서 길을 관찰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와후 지도의 디테일이 생각보다 저열해서 고가도로 옆길이나 교차로에서는 이 길인지 저 길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됐고, 칼로리폭탄님께 너무 죄송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사이에 이미 앞 그룹에 붙겠다는 마음은 꺾여버렸고 우리는 본격 행복 라이딩 모드로 들어갔다. 추격한다고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시원한 음료가 무척이나 마시고 싶었다. 다행이 새만금방조제에 들어가자마자 매점이 보여 보급도 하고 선크림도 고쳐 바를 수 있었다.

▲ 그랜드 랜도너스에서의 첫 식사. 빵은 한 개 반 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새만금방조제와 같은 긴 평지구간은 아무래도 팩라이딩으로 효율 좋게 통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음 그룹이 우리를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보이지 않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그 타이밍에 연도보증 열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머피의 법칙 기가 막히네. 기다렸다 바로 붙었으면 모를까 지금부터 저걸 따라 잡으려다간 게거품을 물 것이 뻔했기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결국 칼로리폭탄님과 둘이서 로테이션을 돌며 진행하기로 했다. 이 구간에서 같은 파워 기준, TT바를 잡았을 때와 후드를 잡았을 때의 속도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TT바를 잡았을 때 속도가 1.5km/h 정도 더 나오는 듯 했다. 사람들이 에어로 에어로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허나 같은 1200km 클래스의 PBP에서는 TT바가 금지 항목이라는데 그 이유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편한 나머지 졸음이 몰려와 낙차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만금방조제는 경치도 밋밋하고 기어를 바꿀 일도 거의 없어 내게는 다소 지루한 구간으로 느껴졌다. 졸음 속에 넋 놓고 달리고 있었는데 「하면된다」 문구가 새겨진 흰 저지의 그룹이 우릴 추월해 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드디어 추월 그룹이 왔구나!」

이 그룹 덕분에 서서히 옅어져 가던 의식의 동아줄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다만 앞에서 로테이션을 돌리는 사람마다 기량 차이가 있는지 교대 시 이따금씩 거리가 벌어졌다. 이를 좁히려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터벌이 다리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도 좋았다. 떨어지지 않겠다는 목적의식 하나가 고통스러운 졸음에서 해방시켜줬기 때문이다.

▲ 새만금방조제. 저엉말 길었다.

새만금도로가 끝나기 직전, 광주600에서 만났던 새벽벽화 님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유니크한 붉은색 도그마를 몰고 다니니 알아보기 쉬웠다. 유유자적하게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 라이딩 중이셨다. 새벽벽화 님은 연대보증 열차에 탑승해 가던 중 팩이 너무 빨라 결국 놓아주었다고 한다. 새벽벽화 님이 이따금씩 '젠니'라는 어플로 연대보증 팀의 현 위치를 확인해 줬는데 충분히 사정권 안에 있어 붙여볼까 라는 얘기가 칼로리폭탄님과 나 사이에 오갔다. 그런데 벽화님이 연대보증 팀은 이번에 여성 멤버 없이 참가해 리미터가 없어 따라가면 죽는다고 극구 말리는 것이었다. 칼로리폭탄님과 나는 그래도 한번 붙여 보기로 했고, 벽화님은 물이 떨어져 보급하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이른 이별이었다. 같이 달린 시간은 짧았지만 뒤에서 큰 목소리로 「여기서 우회전이요! 저기서 좌회전이요!」라고 내비게이트 해주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헤어지면서까지 소리쳐 길을 알려주셨다.

「800미터 앞에서 좌회전 하시면 돼요!」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가 길치인건 어떻게 아신 건지 신기하다.

▲ 새만금을 빠져나온 칼로리폭탄(오렌지)과 새벽벽화(핑크) 님의 모습.

부끄럽게도 벽화님과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또 길을 헤맸다. 고가도로만 나타나면 아주 치가 떨린다. 익숙한 가민이면 그나마 알아보기 쉬웠을텐데 와후 볼트의 초라한 지도를 의지해 가기에는 내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 헤매고 헤매다 저기 보이는 고가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다시 정상루트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고가도로를 통과하면서 올블랙 저지의 랜도너 한 분을 뵙게 되었는데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굉장히 마르셨는데 여유가 있다고 할까? 주행이 굉장히 아름다워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며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랜도너 중엔 숨은 고수가 정말 많은 것 같다.

고가도로를 넘고, 긴 다리를 지나 수수한 시골 동네길로 접어 들었는데,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차량과의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당사자는 불행히도 나다. 앞에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급정차를 한 것이다. 차량이 갑자기 서자 칼로리폭탄님이 왼쪽으로 피하고 검은색 저지의 랜도너 분은 오른쪽으로 피했다. 가장 뒤에서 따라가고 있던 나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방향을 틀었어야 했지만 이미 피한 두 분을 받아버릴 것 같아 그냥 정면을 향한 채 풀브레이킹을 했다.

「.......콩!」

뾰족 튀어 나온 TT바 끝이 트럭의 꽁무니를 살짝 찍었다. 우우.. 정말 다행인 것은, 운전자가 되려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며 그냥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앞에서 아무리 그럴만한 원인 제공을 했건 전방주시 태만 및 안전거리 미확보로 뒷사람 잘못이 큰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핸들바가 카본이라 TT바를 고정하고 있는 부분에 크랙이 생기지 않았나 살펴보았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크게 놀란 내 멘탈은 가출 해버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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