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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자전거 관련

2025 빙그레 그란폰도 후기

by 벨로민턴 2025. 4. 28.

어느 날, 문득 와이프와 함께 사이클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꼭 대단한 기록만을 세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안전하게 통제된 길에서 나란히 달리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함께 한 페이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와이프의 체력으로는 완주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전기자전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귀여운 꼼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찾아보니, 빙그레 그란폰도는 차종 제한이 없었다.

 

대기업이 끼다보니 기념품도 알차고, 보급도 푸짐하고, 참가비는 저렴한 데다가 기부금 처리까지 된다니, 이건 거의 혜자 대회 아닌가. 와이프와의 첫 대회로써 최적의 조건이었다. 코스를 보니 메디오폰도와 그란폰도가 갈리는 지점도 딱 좋았다. 와이프가 도로 주행에 익숙해질 시간도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란폰도, 와이프는 메디오폰도에 등록했다.

대회 당일, 우리는 비교적 앞쪽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기록은 내려놓고 달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룹을 초반에 보내주고, 우리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1보급소에 도착했을 때, 와이프는 ‘안힘들다’라며 그냥 지나쳤다. 늦게 도착한 탓에 대기 줄이 길었지만 나는 보급소에 들러 간단히 보급하고, 다시 와이프를 따라잡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이윽고 KOM 구간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혼자 페이스를 올려보기로 했다. 5분 동안 400W만 유지해보기로 하고 가민 랩타임 NP를 중간중간 체크하며 그대로 밀어붙였다. 콤 구간을 달리는 중 와이프를 따라잡았는데 와이프는 뽈뽈뽈 오르느라 바빠서 내가 지나쳐 간 것도 몰랐다고 했다. 거의 1W의 오차도 없이 400w를 유지했고 결과는 14등이었다. 트레인이 없었지만 1등과 무려 35초 차이가 나서 조금 충격이었다. ㅋㅋ

 

그리고 드디어 메디오폰도와 그란폰도가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와이프는 메디오 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는 홀로 그란폰도 코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보급소에서는 바나나 우유, 도넛, 그리고 빙그레 간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3보급소와 4보급소의 간격이 생각보다 좁아서 마지막 4보급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들러서 배를 채웠더니 에너지가 넘쳤다. 경기 중 배고픔을 느낄 틈은 없었다. 기록을 내려놓고 달리는 것은 오랜만이어서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비축해 둔 힘을 후반에 기분좋게 털어내며 결승선을 향해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을 추월하고 점점 결승선이 가까워져 가던 찰나,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순간 당황했지만, 빗속을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비는 금세 그쳤고, 나는 다시 힘껏 페달을 밟아 마지막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했다. 생각해보니 사진을 찍어주시는 분도 다른 대회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완주 후에는 바나나 우유 모양의 기념 메달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각인해주는 서비스도 있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쿨하게 생략했다. 이 각인 서비스도 다른 대회에서는 5000원 유상 서비스인 점을 봤을 때 찐 혜자 대회가 맞다.

 

밥차 앞에서 다시 와이프와 계현이를 만났다. 와이프는 나보다 30분도 더 일찍 완주했기 때문에 내 밥까지 미리 떠놓는 센스를 발휘했다. 테이블에서 나란히 앉아 5만원이라는 참가비가 말도 안될 정도로 우수한 퀄리티의 점심을 먹으며, 마무리 행사 시작 전까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대박인 것은, 빙그레 음료와 과자를 박스 단위로 아낌없이 나눠준 것이었다. 양손 가득 무거운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정말 가벼웠다. 와이프가 완주 했을 때 완주자가 몇 명 없어서 그때 선물을 더 많이 뿌렸다고 한다. 깔끔한 운영, 풍성한 보급과 기념품, 그리고 벚꽃 가로수가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을 하나 간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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