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호회 후쿠오카 여행 3탄 (마지막)
운명이 정해지는 아침
원래 귀국 예정이었던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우리의 운명은 9시에 결정된다. 당장 부관훼리와 뉴카멜리아호에 연락하고 싶었지만 영업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우선 떠날 채비를 마치고 주문했던 조식 뷔페를 즐기기로 했다. 와이프와 한 번 머물렀던 숙소인데, 조식 뷔페의 퀄리티가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그때도 시켜서 먹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의 예상으로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서둘러 연락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발 빠른 연락을 위해 미리 전화기 앞에 대기하고 9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걸었다. 참고로 데이터 로밍만 해서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데스크에 사정을 설명하니 흔쾌히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했다.
먼저 부관훼리에 '온라인상에서 매진된 것을 확인했지만, 혹시 현장 발권이 가능한지?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은 가능한지?' 물어보았으나 답변은 불가였다. 한참 뒤 날짜까지 예약이 차 있어서 이쪽은 빠르게 포기해야만 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다음은 카멜리아호 차례다. 카멜리아호 직원은 오늘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내일은 선착순 현장 발권에 성공한다면 탑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잔석이 많이 남았는지, 몇 시에 가면 탈 수 있을지 자세히 물어봤으나 직원도 100% 확신하지 못했기에 보수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회장님께서는 최대한 안전하게 내일 6~7시 사이에 미리 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전화 뉘앙스로는 99% 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약 못 타게 되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절충하여 7시에 가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보너스 하루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보너스 하루를 더 보내게 됐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맡기기로 했다. 다시 한 방에 모였고, 회장님과 내가 주도적으로 숙소를 알아봤다. 4명이 한 방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발견하면, 회장님의 국제 전화를 사용해 문의했다. 첫 번째로 전화했던 곳은 자전거를 세울 곳이 없어서 패스했고, 두 번째로 전화했던 곳은 주륜장(자전거 전용 주차장)이 있다고 해서 이곳으로 정했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 오호리 공원이 있어서, 마침 날씨도 좋고 하니 경치를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짐을 바리바리 들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다시 한 번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숙소가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 체크인을 하는 곳이어서 짐을 맡길 장소가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체크인 태블릿에 있는 기능으로 직원과 대화가 가능해서 문의해 보니, 역시나 짐을 맡아주는 공간이나 서비스는 따로 없다고 한다. 근처의 니시테츠 후쿠오카역 10번 출구에 코인로커가 있다는 정보를 얻어내고 다시 짐을 챙겨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비용은 들겠지만 짐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가장 큰 코인로커 바로 아래 단계의 사이즈 로커에 4인의 여분의 짐을 욱여넣고 키를 챙긴 뒤,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여행 계획에 대해서는 내가 총대를 메었기 때문에, 오후밖에 없는 시간을 감안해서 비교적 가까운 다자이후 왕복 코스를 추천했다. 다들 이견이 없어서, 식사하면서 스트라바로 루트를 그렸고 가민에 옮긴 뒤 출발했다.
다자이후 왕복 라이딩
스트라바 앱으로 그린 코스를 따라가고 있는데, 잠시 길을 잘못 들어간 곳이 자전거 전용 도로여서 정말 쾌적하고 즐겁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중간에 미니스톱에서 커피 타임도 갖고, 눈앞에서 선회해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조금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생긴 아쉬움이 오늘 하루로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자이후에 들어가서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도보로 이동했다. 다자이후는 네 번째 방문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이 붐비는 날이었다. 와이프와 왔을 때 맛있게 먹었던 우메가와 모찌를 인당 1개씩 주문해 보급으로 떼우고, 다자이후 텐만구의 정원과 숲, 원숭이 공연 등 즐길만큼 즐기고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라라포트에 들러 건담도 보고, 짧은 시간이지만 알차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했다.
홀리.. 코인로커 키 분실
내게 왜 이런 일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나 싶었는데, 코인로커의 키가 없는 것이었다. 분명 지갑에 넣어놨는데, 어디선가 결제를 위해 넣었다 뺐다 하는 과정에서 흘린 것이 분명했다. 안내문을 보니 벌금이 몇 배는 비싸 눈물이 찡 났다. 담당 공무원이 벌금 확인증을 작성하다가 한국인 국적의 세상 우울한 내 표정을 보았는지, 갑자기 종이를 가로세로로 착착 찢어버리더니, "요시, 나캇타코토니시요(그래, 몰랐던 걸로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키가 들어가는 뭉치를 통째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비싼 비용(2000엔이었나?)을 받는 것인데, 본인이 스페어로 알아서 할 테니 남은 여행 무사히 잘 하라고 했다.
세상에, 원칙주의에 그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이런 호의를 받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이미지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됐다. 돈을 떠나 그 호의가 너무 감사했다.
귀국 준비
코인로커에서 짐을 챙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2인 1실로 두 방을 사용해 왔었는데, 처음으로 4인 1실을 같이 이용하게 되니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자리 선정, 샤워, 짐 정리, 충전 등 손발이 척척 맞아 빨리 진행됐다. 역시 남자들이라서 그런가? 이제 남은 일은 마지막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것과 기념품을 사는 일이었다.
기념품은 돈키호테에서 면세 혜택을 받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한방에 해결 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도 가면서 괜찮은 곳이 있으면 들르려고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결국 돈키호테가 있는 건물의 쿠라스시라는 회전초밥 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웨이팅이 엄청나서 진짜 배고파서 죽을 뻔했다.
쿠라스시는 처음이었는데, 스시로보다 주문과 배달 시스템이 더 재밌고 쾌적하게 돼 있어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다만 맛은 스시로 쪽이 더 취향이었다.
뉴카멜리아호 현장 발권 성공, 그리고 귀국
아직 조금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에 호텔을 나섰다. 과연 우리는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을 것인가? 하카타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회장님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창구가 열리는 시간까지 좀 무료하긴 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발권을 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이동해 배에서 먹을 점심을 남은 예산을 전부 털어 구매했다. 예산도 정말 알차게 사용한 것 같다.
여담이지만, 퀸비틀호에서 인당 20만원씩 보상금을 나중에 지불해줬기 때문에, 동호회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합치면 결과적으로 엄청난 가성비의 여행을 하게 됐다.
마지막 날의 날씨도 떠나기 아쉬울 만큼 좋았고, 배가 출항하며 첫날 달렸던 시카노시마 옆을 지나가는 등, 지난 여행을 곱씹을 시간도 서로 가질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다.
직장 동호회를 통해 해외 자전거 여행을 오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힘든 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정말 재밌고 좋았던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기회가 또 내 인생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추억을 하나 더 간직하게 된 걸로 충분히 만족하며 이번 여행 후기를 마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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