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0일에 백두 3번(PT-21, 하늘 아래 첫 고개)에 도전해 완주했다. 이번 글에서는 11월에 백두에 도전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서 가는지 공유 차원의 내용과 간단한 소감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백두 4번도 같은 이유였지만 백두 챌린지는 우선 집에서 가까운 순으로 도전하고 있다. 11월 초에 첫 백두 PT를 완주하고 추위 때문에 남은 세 코스는 이듬해로 넘기려고 했으나 가능만 하다면야 한 번이라도 더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무리하게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1. 준비
불과 며칠 전에 백두 4번을 뛰었기에 몸은 장거리에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였다. 다만 너무 추웠던 기억에 이번에는 장비를 잘 갖춰서 덜 고생하자는 마인드로 준비물을 꾸렸다. 상의는 브린제, 기모 저지, 재킷 조합으로 가고 하의는 동계 빕, 발은 토커버 위에 슈 커버까지 더했다. 얼굴과 머리 쪽은 낮에는 마스크와 쪽모자를, 밤에는 바라클라바를 착용했다. 친구 진호가 선물해 준 아덴바이크 동계 재킷은 지퍼가 위아래로 열려 체온 조절에 유용했고, 발은 커버류로 2중 덧방을 했지만 의미 없다시피 했다. 의류에 지갑을 잘 열지 않는 편인데 복귀 후에 동계화를 바로 주문했다..
무적의 바미트는 한나절 정도의 거리라면 장착하고 갔을 텐데 포지션에 제약이 많고 다운힐에서는 확실히 드롭을 잡고 내려가는 것이 안정감이 있어 제외했다. 대신 저렴한 메리노울 이너 장갑을 구매해 기존에 쓰던 알리발 장갑 밑에 착용해 보강하기로 했다. 메리노울 장갑은 처음 써봤는데 땀에 한번 젖으면 좀체 마르지 않았지만 그 상태로도 보온력이 살아 있어 달리는 중에 한해서는 춥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다음으로 자전거인데 장거리를 탈 땐 3만 킬로미터 이상을 함께 한 에딕트가 아무래도 몸에 익어 편했지만, 눈 예보와 다운힐이 많은 코스 특성을 고려해서 디스크 로드를 가져가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착물은 경쾌한 주행감을 위해 새들백을 제외하고 탑튜브 백, 프레임 백 조합으로 컴팩트하게 꾸렸다. 그리고 손이 자주가는 휴대폰, 보급식, 마스크, 휴지와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은 저지 뒷 주머니와 카고빕 포켓에 넣어 사용했다.
보조배터리는 저번에 경험해 보니 1만까지는 필요 없고 5천 미리 암페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휴대폰은 인증 사진을 찍거나 드문드문 톡을 보내는 용도로만 사용하면 방전될 문제가 없었기에 가민의 생명유지장치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져갔다.
공구통에는 기본적인 펑크 수리 키트와 튜브 2개를 넣었고, 물통은 물은 잘 마시기 않기에 750ml짜리 하나만 챙겼다. 마지막으로 위장 트러블에 대비한 제산제와 후반부를 책임져 줄 파워젤을 12포 챙기는 것으로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준비물 요약 | ||
의 류 | 얼굴/머리 | 헬멧 / 변색 고글 / 낮(마스크, 쪽모자) / 밤(바라클라바) |
상의 | 브린제(이너) / 기모 긴팔 저지 / 재킷 | |
하의 | 동계용 카고 빕 | |
발 | 메리노울 양말 / 스피드플레이 클릿슈즈 / 토커버 / 슈커버 | |
자전거 |
프레임백 | 파워젤 10포 / x반도 / 충전기 / 18650 배터리 x 3 / 헬멧 라이트 |
탑튜브백 | 5,000mAh 보조배터리 / B타입 케이블(C타입 젠더) / 파워젤 2포 / 에어팟 / 위장약 | |
공구통 | 튜브 x 2 / 타이어 레버 x 2 / 미니펌프 / CO2, 인젝터 / 라텍스 장갑 | |
물통 | 750ml x 1 | |
부착물 | 가민830 / 가민 바리아 / 라이칸 전조등 / 후미등(싯스테이 장착) | |
기 타 | 카고빕 주머니 | 휴대폰, 마스크, 여행용 티슈 |
저지 뒷 주머니 | 보급식 |


2. 계획 및 전략
브레베에 참가할 때 경로 파일을 넣고 cp 간 거리 정도만 확인하고 가는 편인데, 백두는 실패 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간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무시 못하는 수준이었기에 이번에는 DNF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면밀히 사전 준비를 해서 갔다. 대전 400에서 만나 일면식이 있는 야수님의 후기에서 타임 테이블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페이스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
(1) 코스 분석
우선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코스 프로파일은 다음과 같다.
총 거리 464km / 획득 고도 9,453m / 제한 시간 30:56
PT를 몇 개 달려본 결과, 뻥 고도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실제 완주 데이터(거리 466.61km / 획득 고도 9,367m)를 보니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와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고경사(10~20%)의 길고 힘든 업힐은 초반에 대거 몰려있기 때문에 타임테이블에 맞게 중반까지 잘 진행했다면 완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직전에 도전한 백두 4번에 비해 획득고도도 낮고 제한시간은 한 시간이나 길었기에 심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했다.
(2) 숙박시설
출발 하루 전, 춘양목 호스텔에서 1박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사실 출발일을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에 당일 예약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1인실의 저렴한 방은 다 나가고 없었다. 3인실에서 좀 비싸게 자긴 했어도 조용하고 깨끗하고 난방도 잘 들어와 편히 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출발지인 CU와 무척 가깝다.
(3) 전략
빨리 달리고, 제대로 쉬기
가장 먼저, 페이스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 첫째, 쉬는 시간을 줄이고 천천히 오래 탈 것이냐. 둘째, 빨리 달리고 많이 쉴 것이냐. 사실 몸에 오는 대미지를 생각하면 전자가 맞는데 정황상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판단 이유는 당시의 일출(06:57), 일몰(17:19) 시간을 생각하면 야간 라이딩 시간이 너무 길었고 밤 기온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때 백두 4번에서 새벽에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이 모텔에 들어가 쉬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옳거니, 최대한 거리를 빼놓고 대휴식을 취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구나 싶었다.
밤에 숙소를 잡고 최대한 편하게 쉬고 나오면 페이스도 올라가고 야간 라이딩 시간도 줄고 옷도 드라이어로 말릴 수 있고(특히 꿉꿉한 패드), 전자기기 충전도 가능하고! 생각해보니 너무너무 좋은 점이 많은 게 아닌가? 또 백두 3번은 중반 이후로는 코스가 쉬워지니 마음에 여유도 있을 것 같고 아주 좋은 생각 같았다.
'그래, 초반에 열심히 달려보자'
중간에 쉴만한 곳이 있나 찾아봤더니 CP7 하늘재를 지나고 내려오는 지점에 문경시가 있다. 249km 지점이다. 코스에서 아주 살짝만 벗어나면 강가에 숙박지가 아주 많다. 가장 저렴한 숙소(아리랑호텔)를 예약하고 갔는데 무려 온천수가 나오고 욕조도 있어서 예상외로 너무 좋았다. 뜨거운 물을 받고 들어가 몸을 녹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숙소에 밤 9시 20분에 들어가 11시 50분에 나왔으니 2시간 반을 쉬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씻고 밥 먹고 옷, 장갑 말리는 데 1시간 정도 사용한 것 같으니 수면 시간은 1시간 반 정도로 볼 수 있다. 백두에서는 이 정도의 취침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회복도 제법 된다. 참고로 페이스 조절에는 파워미터를 활용하는데 숙소까지는 대략 NP 2.7w/kg대로 진행했다.
대휴식 뒤로 컨디션이 좋아 룰루랄라 이화령도 넘고 시간에 쫓기는 느낌도 없어 상당히 느슨하게 진행했다. 단, 낮에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을 때 30분, 죽령 휴게소에서 너무 추워 난로 앞에서 20분 쉴 때를 제외하고는 정말 쉴 새 없이 꾸준히 달려왔다. 초반에 힘을 써두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백두 3번을 달리면서 코스 분석을 하고 안 하고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
(4) 페이스(참고용)
완주 시간: 28시간34분 | ||
컨트롤 포인트 | 거리(누적) km | 도착시간 |
START | 0 | 07:00 |
CP 01 | 49(49) | 09:27 |
CP 02 | 22(71) | 10:47 |
CP 03 | 30(101) | 12:52 |
CP 04 | 53(154) | 16:13 |
CP 05 | 25(179) | 17:39 |
CP 06 | 13(192) | 18:04 |
CP 07 | 38(230) | 20:50 / 대휴식 |
CP 08 | 38(268) | 01:19 |
CP 09 | 37(305) | 03:26 |
CP 10 | 46(351) | 05:44 |
CP 11 | 47(398) | 08:38 |
CP 12 | 27(425) | 09:57 |
CP 13 | 15(440) | 10:58 |
FINISH | 24(464) | 11:34 / 다운힐 |
(5) 기억에 남는 점
백두에서 첫눈을 보다.
원래 6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비가 계속 와서 한 시간을 미뤄 7시에 출발했다. 날이 밝았는데 더는 기다릴 수 없겠다 싶어 나갔는데, 처음에만 보슬비를 조금 맞고 이후로는 비가 그쳐 굉장히 운이 좋았다. 대신 중간중간 눈이 내렸는데 겨울비를 맞는 것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나저나 첫눈을 백두에서 맞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경사에다가 타이어가 자꾸 미끄러져 가장 고생했던 고치령, 마구령 정상에 올라 눈에 뒤덮인 운치 있는 풍경을 보았을 땐, 아쉬워서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질 못했다.. 좀처럼 사족을 곁들이지 않는 얀 회장님도 인증 사진을 보고 눈이냐면서 부산에서는 눈을 절대 못 본다며 어린아이처럼 상당히 귀여운 모습을 보이셨다.
익숙지 않은 자전거. 다운힐이 무섭다.
현재 보유 중인 자전거로 설리(투어링)와 에딕트(올라운드), 그리고 브롬톤(미니벨로)이 있다. 이 세 자전거의 공통점은 로우 프로파일의 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에 타막을 기추 했고 길이 미끄러운 날씨에 안정적인 제동력을 확보하고자 가져간 것인데, 도리어 다운힐에서 너무 큰 공포를 경험하고 말았다. 타막은 순정 휠이 앞 51mm, 뒤 60mm로 본인 기준 상당히 높은 림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는데 옥녀봉 다운힐에서 몰아치는 강풍에 자전거가 휘청휘청했고 급기야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었음에도 핸들이 털려 좌우로 부르부르 떨리는 상황이 발생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너무 흔들려서 포크가 잘못 조립된 줄 알았을 정도이다.
이 경험으로, 앞으로 자전거를 선택할 때에는 바람을 포함한 날씨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도너스에서는 로우나 미들림 프로파일이 좋은 것 같다.
추가로, 다운 튜브와 프런트 휠이 가깝게 디자인된 자전거를 처음 타다 보니 저속에서 핸들을 많이 꺾거나 할 경우 앞 휠에 슈즈 코가 닿아 넘어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도로 봉쇄
특히 시간이 여유치 않은 코스를 달릴 때 마주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부분이다. 백두 4번에서 무너진 신풍령 도로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얀이 제안한 대로 우회로를 선택하지 않은 결과, 꾸정꾸정한 길을 걸어 올라가다 클릿 페달이 막혀 DNF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구간이 한 곳 존재했다. 단양을 지나 기촌교를 건너 업힐을 올라가게 되는데 이 도로가 전면 봉쇄돼 있었다. 당장 주변에 사람이 안 보여 실제로 공사 중인지, 또 어디까지 공사 중인지도 모르겠고, 항상 언덕 위에 CP가 있다 보니 우회하기도 찝찝해 마음이 복잡했다.
제한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추운 날씨 속에 우회로를 알아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대형 사다리차가 길을 통째로 막고 암벽 공사를 하고 있었고, 분주하게 일하시는 아저씨들께 서먹서먹 인사를 건네며 차 밑으로 지나가는 과정에 위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자전거가 아주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벌을 받은 것이다.. 흙을 대충 털어내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업힐을 계속하는데, 위에서부터 도로 상황을 훑고 내려오던 아저씨 한 분이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밑에 적어놨지 않냐, 못 봤느냐, 이래저래 타이르셔서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 세차
'나를 부른 게 너니?'
CP8 조령산 자연산 휴양림에 도착하니 등산객들 옷에 뭍은 흙먼지를 터는 기계가 보였다. 지나치기 어렵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한밤중어서 민폐를 끼칠 염려도 없었다. 자전거를 옆에 가져다 놓고 다운 튜브에 지저분하게 붙은 나뭇잎과 핸들바 주변의 먼지를 신나게 에어건으로 털어주고 내려갔다.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오르막 길 없음'
업힐에 들어서게 되면 가민에서 클라이밍 프로 페이지를 자동으로 띄워준다. 백두는 워낙 주옥같은 업힐이 많아 하나하나 지워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특히 마지막 업힐인 작점고개에 도달하여 클라이밍 프로 페이지를 깨끗이 비웠을 때, 백두 3번 도전 중에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추풍령에서부터 김천까지 이어지는 다운힐은 아주 기가 막히다.
완주
PT-25(백두 4번)에서의 잦은 DNF로 악연이 있는 김천. 몇 개 월 안지났는데 벌써 네 번째다. 그토록 지겨운 김천이지만, 완주지로서 김천의 땅에 들어섰을 때 익숙한 고향에 돌아온 듯이 반가웠다. (그러나 갈매기 챌린지 때문에 또 들러야 한다.)
앞으로 남은 백두 1, 2번을 무사히 잘 넘길 수 있도록 겨울철 농사에 매진, 또 매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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