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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도너스/2024 한국 란도너스 15주년 대회 (1500K)

코리아 1500 LRM

by 벨로민턴 2024. 6. 15.

 

 

3개월간의 빌드업

 

작년에 임신 중이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유롭게 다니기 힘드니까 지금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내줄게."


그렇게 해서 참가한 대회가 2030이었다. 기쁘면서도 슬픈 감정이 스며들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복귀 후 직장에서는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뀌지 않았냐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또 다른 특별한 대회가 생겼다. 15주년 1500K 대회라니! 몹시 나가고 싶었다. 120% 꿀잼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미리 물어보면 당연히 반대할 것이 뻔했다. 마침 대회가 2월 20일에 태어난 아이의 100일이 지난 후에 열리는 것을 보고 사전 접수를 해두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100일이 지나지 않았으면 접수조차 못했을 텐데,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그렇게 대회에 나가기 위해 3개월 동안 집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빌드업을 했다.


대회 3주 전,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돌봐줄 이모도 구했고, 대회가 수요일 저녁에 시작되니 오전까지는 아이를 돌보고 일요일에는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런 약속 때문에 대회 중 하루에 할당되는 거리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1500K 대회 참가 전까지 업무가 너무 많았고, 퇴근 후에는 아기를 돌보느라 계획을 세우고 자전거를 정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대회 하루 전, 같이 차를 타고 상경하기로 했던 Shin님이 슬푼달팽이님의 자료를 봤냐고 물어봐서 한번 들어가 보니, 어마어마한 양질의 자료가 있었다. 이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슬푼달팽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단 18시에 출발하고, 첫날 횡성(135km 지점)에서 숙박할 계획만 세웠다. 그리고 일요일까지 피니시하려면 이틀차부터 하루에 340km 정도 달려야 한다는 단순 문과식 계산을 해보니, 대충 1일차 횡성, 2일차 영주, 3일차 곡성, 4일차 상주, 5일차 서울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일차 횡성을 제외하고는 계획을 지킨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밤샘 라이딩은 건강과 안전상의 문제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쉴 때는 충분히 쉬고 집중해서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육아로 인한 피로 누적과 열 적응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1000K 이상의 라이딩 시 가이드라인으로 잡고 있는 평속 26km의 벽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여러모로 녹록치 않은 1500K 대회였다.

 

1000K 이상의 최근 로그를 모아놓고 보니, 1500K가 확실히 힘들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시작부터 일정이 틀어지기도 했다. 시도교류로 경기도권으로 떠난 전 직장 동료 재현이가 출발지까지 와준다고 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그런 시간까지 계산해서 목포에서 일찍 출발한다고 한 것이 12시 30분이었는데, 차가 너무 막혀 17시 20분 쯤에 신정교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18시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얼굴만 보고 돌려보낼 수는 없어서, 같이 올라온 Shin님께는 나는 18시 반쯤에나 출발하겠다고 말하고 일단 헤어졌다.

야간 라이딩은 속도가 떨어져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거리를 확보하고 싶었다. 식사 후 18시 15분 쯤에 체크인 장소로 돌아와 브레베 카드를 받고 30분에 출발하겠다고 하니 19시, 20시 같이 한 시간 단위 스타트만 가능하다고 해서 시간이 붕 뜨게 됐다. 하지만 덕분에 멀리서 와준 재현이를 한강까지 배웅해줄 시간이 생겨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와이프가 힘내라고 정성껏 싸준 김밥을 먹으며 상경했다. Shin님과 둘이서 냠냠.
콱 막히는 구간이 두 곳 정도 있었다. 차라리 내려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을 정도.
저녁으로 금성수제돈가스 집에 가서 반반돈까스를 먹었는데 물리지 않고 제법 맛있었다.
저 멀리 체크인 장소가 보였다.
이미 저녁 6시 출발팀은 떠난 뒤
시간이 남아 따릉이를 대여한 재현이를 한강까지 배웅.



1500 완주까지 이모조모

 

1일차

 

출발지에 돌아오니 놀랍게도 Shin님이 출발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 스타트가 안되어 19시에 출발해야 한다고 하니 같이 가겠다고 해서 Okay. 고인물이 주로 참가하다보니 잘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한 두 번 본 얼굴이 대다수였다. 반가운 빈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2030 때 닥터바이크에서 뵀던 간큰남자님, 반달님 등이 알아봐주셔서 기쁘기도 했다. 여전히 출발지에서는 고마우신 많은 자봉분들이 고생을 해주고 있었다.

참고로 3일차에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머드가드는 경량 및 에어로를 위해 드랍백에 맡겨 상주에서 장착하려 했으나, 드랍백 밖으로 튀어나오는 품목은 어렵다고해서 프런트 쪽만 다시 차에 갖다 놓고, 리어는 장착한 채 출발했다.

7시 출발은 그다지 인원이 많지 않았는데, 초반 페이스가 느슨한 것 같아 해가 지기까지 1시간 동안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일단 앞으로 나가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Shin님만 붙어왔고, 어느 순간 한 분이 앞으로 슉 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CP1에서 봬보니 타이거님이었다. 부산600 Heavy 때 뵙고, SBS 때도 뵀는데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이시다.

그런데 반포대교에 다달았을 때 가민에 믿기 어려운 알람이 뜨게 된다. 같이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개돌킹이 아기가 아파 DNF를 하고 목포에 내려가봐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기 상황에 따라서는 다음날 올라와서 재출발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는 일렀다. 올 초에 일본 여행을 같이 갔을 때도 아기가 아파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같은 경우여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육아로 인한 만성 피로, 운전 피로가 있었지만, 대회에 참가하니 마냥 기쁘고 들떠서 CP1까지는 아주 쌩쌩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타이거님과 만나 횡성까지 좋은 페이스로 이동했고, Shin님과 나는 여기서 숙박, 타이거님은 일단 계속 진행하신다고 하셨다. 무박 라이딩을 하시는 분들의 그 정신력이 정말 존경스럽다.

 

 

저녁 7시 출발 그룹
아이유 고개. 다들 힘차게 오르는 중이다.
횡성에 있는 호텔타임에 도착. 이젠 자전거만 봐도 누구 것인지 알겠다. ㅋㅋ
함께 올라 온 Shin님과 하루를 마무리. 우리 지역의 젊은 인재~

 

 

2일차

 

목표하는 바가 일요일 피니시였기 때문에, 페이스 배분을 위해 이틀차부터 본격 솔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5시에 일어나 30분 동안 숙소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5시 40분에 방을 나섰다. 사실 첫날 18시에 출발하지 못해 손해 본 1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4시에 일어나려고 빅스비에게 "내일 4시에 깨워줘"라고 알람 맞추기를 요청했으나, 자정이 넘어서 부탁하는 바람에 3일차 4시로 알람이 맞춰져 버렸다. 그런데 웃프게도, 여전히 새벽 수유를 끊지 못하고 일어나는 우리 아기가 일어나는 시간대에 몸이 반응해서 저절로 눈이 떠져 큰 재앙은 면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5시였다. 이미 날은 훤하게 밝아왔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더 회복되었으리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틀차 라이딩을 시작했다.

아마 모든 이들이 가장 힘들어했을 이틀차 날이었을 것이다. 황재와 태기산 업힐 콤보를 넘어야 하고, 동해안에 진입하면 고각의 깔딱 고개와 역풍이 진행을 방해하여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구간이었다.

그리고 태기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2030 대회 때 여수에서 마주쳤던 일본 라이더를 발견해서 정상에서 기다렸다가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건투를 빌어주기도 했다.

 

태기산 정상 7:43 도착. 춥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18도로 매우 쾌적했다.
태기산 CP
요시다 상이었나? 파이팅 입니다!

 

태기산을 넘고 나니 배가 고파왔고 진부면에 진입해 가게가 보이기 시작하자 편의점은 자주 들를 것 같아서 오랜만에 가게를 들어가보기로 했다. 눈에 들어온 것이 "새참"이라는 분식집이었다. 좀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 비빔국수와 추가로 김밥을 한 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밖에서 체인 오일을 도포하고 자전거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참가자 한 분이 기웃기웃 이쪽을 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행동거지로 보아하니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영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재팬'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오호, 일본어 전공자로서의 사명을 다시 떠올리고 혹시 주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메뉴에 대해 설명하니 내가 시킨 것과 같이 주문하겠다고 해서 같이 비빔국수와 김밥 한 줄을 먹게 됐다. 매운 것 괜찮냐고 물어보니 아주 좋아한다고 했는데, 입에 잘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처음 후루룩 하더니 '오!'라고 했으니 맛은 있었다는 거겠지?

역시 작년 2030 때 만났던 일본인 참가자들이 했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고각 업힐이 많아서 힘들다는 평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한 달 전 도쿄에서 홋카이도로 가는 1900K 브레베를 완주한 이후, 안장 위에 전혀 오르지 않아서 상태가 메롱이라며 자책하고 있었다. 여기서 헤어진 이후로 만나지 못했지만 무사히 잘 완주했으리라 믿는다.

 

분식집 '새참'에서 밥을 먹는데, 사장님께서 이 가게를 어제 새벽에 15명 정도 지나갔다고 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무박 라이더들이 그렇게 많았을 줄이야 ㄷㄷ
타지에서 브레베라니 너무 부럽고, 좋은 추억과 함께 무사 완주 하기를 기원합니다!

 

다사다난했던 이틀차 라이딩에서 항상 유쾌하고 반가운 연대보증 형님들도 발견했다. 여전히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형님들로부터 기운을 받고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출발할 수 있었다. 시라소니님은 얼음물까지 구해오셨는데, 여러 명의 팀원이 손발이 척척 맞아 하나의 유기체가 된 듯한 느낌을 연대 형님들께 받는다. 개돌킹의 DNF에 관해 걱정을 많이 해서 고맙기도 했다. 다른 분야에 매진하고 계신 스타이렌님도 오랜만에 뵈니 놀라보게 슬림해지셨던데, 참 대단하신 전국 각지의 기인들이 이곳에 모여있는 것 같아 오래간만에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밝은 분위기의 연대 팀
업힐에서 다시 만나고~
백복령 역방향은 처음인 것 같은데, 정상에 다달았을 때 외국인 랜도너를 한 분 발견했다. 알레알레.


이틀차 라이딩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울진까지 이동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지만, 나는 일요일 피니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더 진행해야 했다. 울진의 김밥나라에서 아내와 통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졸립고 힘들다며 징징대버렸다. 아내는 천사 모드로 변해 몸 상하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월요일까지 타고 오라며 일찍 쉬기를 권장했다. 이 말이 진심인지, 기출변형인지 함정 카드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밥을 먹다 보니 힘이 나기도 했고, 개돌킹이 재출발을 위해 서울에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원래 계획했던 100시간 언더 완주 스케줄을 선행하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고 싶어서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울진을 지나, 은어다리 CP를 지나, 답운재, 꼬치비재, 회고개재 3콤보 업힐을 넘고 GS25 봉화현동점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여기에서 미리 와 계신 참가자 한 분이 라면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밥맛이 없어 안에서 죽을 먹고 있던 중, 어디선가 여성 랜도너 한 분이 들어와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셨다. 봉화까지 간다고 하니 숙소를 예약했냐고 물어보길래 가서 알아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쪽 숙소는 이미 꽉 차 있다고 하셨다. 지금 영주까지 가기에는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았지만, 밖에서 라면을 드시던 분께서 봉화에 숙소를 잡아 놨으니 같이 자도 된다며 주소와 호실을 알려주셨다. 세상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봉화까지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와이프가 봉화 쪽 숙소에 미리 전화를 돌려서 공실을 하나 만들어주겠다는 곳을 찾아 그 분께 민폐를 끼치지 않고 들어가서 쉴 수 있었다. (번호 끝자리 1423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울진에서 식사 하고 나오는데 소화가 너무 안돼 잠깐 쉬었다 가기도 했다.
은어다리는 정말 컨셉과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위장 상태가 별로일 땐 죽으로 속을 달랬다.


 
3일차

 

험난한 2일차가 지나면서 마음은 편해졌으나 몸은 점점 더 불편해져만 갔다. 날이 거듭할수록 근육이 지쳐가고, 무더위로 인해 식욕까지 없어 에너지 보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사진도 적게 찍고, 기억도 흐릿하다. 원래 계획으로는 곡성까지 이동해야 했지만, 열 적응이 안 된 상태여서 결국 해가 지기 전에 만난 봄날님의 조언대로 하동에서 멈추게 되었다.

이 날은 여러 가지 고난이 이어졌다. 벌에게 쏘이기도 했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고, 너무 더워서 얼음물을 등에 꼽고 달리기도 했다. 하나로마트가 보일 때마다 쭈쭈바를 두 개씩 사서 하나는 푸드 파우치에 넣고 교대로 물고 달리며 더위를 이겨내려고 애썼다. 팔토시와 발토시, 저지에 물을 뿌려가며 정말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상주 CP에 도착했을 때는 고르비님과 자봉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감사하게도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드랍백도 찾아주시고, 라면을 먹고 난 후 남은 쓰레기도 치워주셨다. 상주 CP는 무인 카페 컨셉의 장소여서 카페라떼를 하나 주문해 마셨는데, 라떼의 우유가 조금 달짝지근해서 굉장히 맛있게 마신 기억이 난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에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조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비록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순간의 선택과 결정들이 모여 결국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꿀벌이 빕에 박힌채로 사망. 살다살다..
주먹을 먹고 헛구역질하는 귀요미. 영상통화로 힘을 얻기도 했다.

 

밥이 안들어 가서 주 에너지원은 음료수와 쭈쭈바였다.
얼음물을 등에 꼽고 달리다가 조금 녹았을 때 마셔주면 죽여준다.
최대한 아껴먹는 것이 포인트
상주 CP의 모습
너무 예쁘고 쾌적한 장소였다.
이 커피바 기계의 퀄리티가 상당했다.
저녁이 다 됐음에도 밥 맛이 없어서 죠리퐁과 우유로 해결하려던 중, 봄날님이 편의점에 들어오셔서 하동까지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아니, 저 벽은 뭐야 ㄷㄷ
하동에 있는 테마모텔이었나? 방이 넓어서 짐을 펼쳐 놓고 정리하기 너무 좋았다. 건전지가 없어서 TV가 안꺼지는 건 좀.. ㅋㅋ

 

 

 

4일차

 

우리는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초단기 예보를 이용하면 정확하게 비가 내리는 위치와 시간, 강우량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 전선이 남서에서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두르면 정읍 CP까지 거의 젖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싸한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이 날은 4시 20분쯤 출발해, 대회 기간 중 가장 빨리 기상해서 움직인 날이었다. 매화마을 CP 앞 세븐일레븐에서 커피 충전을 하고, 섬진강 자도를 따라 곡성을 지나 섬진강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이 구간을 아침에 통과하니 은근히 보급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의외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라면 섬진강 인증센터에서 도장만 찍고 빠르게 정읍으로 넘어갈 생각이었으나, 아침부터 먹은 것이 없어서 인증센터 앞 가게에서 라면을 팔길래 하나 시켜서 먹었는데, 평소에는 먹지 않는 국물까지 맛있게 완뽕했다. 가격이 4,000원이어서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이때는 충분히 값어치를 한 것 같다.

그런데 라면 먹는다고 시간을 쓴 탓에, 정확하게 섬진강 CP에서 정읍까지 이어지는 다운힐 구간에서 폭우를 맞게 되어 울상사가 됐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적당히 젖었을 텐데.. 정읍CP에 도착하니 항상 자봉을 해주시는 이승룡 회장님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고르비님이 나와 계셨다. 사이다와 송편 보급도 해주시고, 후미등 충전까지 풀 오토로 랜도너가 확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는 듯한 움직임? 완벽한 서포트에 감탄했다.

사실 4일차의 가장 큰 기대는 정읍CP 근처에 있는 길림성에서 콩국수를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쫄딱 젖어서 몸도 덜덜덜 떨려오는데 콩국수가 웬말이냐 싶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아쉬워서 들르기로 했다. 역시나 명장 콩국수,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설탕을 꽤 넣어 먹었기 때문에 당충전도 제대로 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콩국수를 먹고 다시 비를 맞으며 잠시 이동하니 너무나도 추워서 다시 정읍CP에 들어가 옷을 말리고 머리를 말리고, 쿨토시와 발토시를 워머류로 갈아입었다.

결과적으로 정읍CP에서 1시간 이상 쉬었다 가게 된 꼴인데, 갑자기 봄날님을 포함한 일행들이 우르르 도착해 굉장히 왁자지껄한 CP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이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이 날도 마음은 상주였으나 현실은 보은으로, 무리하지 않고 이동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섬진강 인증센터에서 라면 보급
나가려는 타이밍에 빡무님 발견!
정읍 입성. 빗(눈)물이 앞을 가린다..
힘들 때는 과감하게 쉬었다 갔다.
정읍 길림성의 명장 콩국수! 최고의 단짠꾸덕 콩물.
세종시 쪽이었나? 힘들 때는 과감히 눕는다. 쉴 때는 확실하게!
자전거 도로도 그렇고 주변 시설이 너무 잘 돼 있어서 부러웠다.
울 아들 개꿀잠 자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보며 하루를 마무리.

 

 

5일차

 

계획했던 마지막 날이다. 자전거만 타서 벌써 일요일이라니 놀라웠다.

 

보은 시내에 진입하기 직전 3만 5천원짜리 모텔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잠들었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보은 시내의 편의점에 들러 아침식사를 한 뒤 말티재를 넘던 중 최도령 님을 만났고, 말티재 정상에서 봄날님 그룹과도 만났다! 봄날님은 자주 만나 정이 더 든 것 같다. 상주 CP에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도 DNF하신 이브님께서 자봉으로 변신해 계속 서포트해 주셨고, 나는 드디어 입고 빨던 옷을 벗어 던지고, 드랍백에 넣어두었던 1500K 기념 저지로 갈아입고 마음을 새로이 했다.

또 국토종주길의 꽃 이화령을 지금까지 총 다섯 번 넘어봤는데, 그 중 가장 화창한 날이었고 정상에서의 경치도 정말 멋있었다. 이화령을 넘기 전에 울산 일지매님을 만나 잠시 얘기도 나눌 수 있어서 오랜만에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일지매님과 하나로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에 물고 이화령 업힐에 들어갔는데, 백두대간 챌린지를 완주하신 분 답게 업힐을 잘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이화령 업힐은 어림잡아 쭈쭈바 두 개면 정상까지 딱 맞을 것 같았는데, 세 개는 사야 했다.

그러나 이화령을 넘고 다운힐까지 무사히 마친 뒤 세상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남은 것은 평지인데 큰 체인링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00w 정도의 힘을 가하면 100% 체인이 떨어지더니 시간이 지나자 낮은 파워에서도 체인이 아우터 기어에 물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너 체인링 기어로 한강을 주파하는데 답답해서 죽을 뻔했다. 앞 드레일러에 약간의 손상을 감수하기로 하고 11t도 막 쓰고 했는데, 체인이 대각선으로 꺾이며 드르륵드르륵 안좋은 소리가 났지만 어떻게든 복잡한 한강 자전거 도로를 지나 닥터바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봉분들께서 늦은 시간에도 반갑게 맞아주셨고, 제공해 주신 음료와 바나나는 꼴딱꼴딱 정말 잘 넘어갔다. 집에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운전이 더 힘들었다. 의식이 몇 번 날아갈 뻔해서 휴게소에 들러 쉬었는데, 들를 때마다 2, 3시간씩 잠이 들었다. 결국 집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오전 10시였다.

몸은 매우 힘들었지만 기념적인 15주년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기재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완주 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줘서 모든 상황이 감사했다. 특히 별말 없이 독박육아를 해내고 응원해 준 아내에게는 더욱 감사하다. 당분간은 육아를 위해 랜도너스를 잠시 떠날 것 같아서 슬프지만, 그만큼 다음에 복귀했을 때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번 후기를 마친다.

 

말티재. 이런 업힐이 집 주변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뵙는 볼남님 일행
최도령님
피로에 눈이 부었다.
상주 CP에서 1500 저지로 환복
누가 기증 하셨다고 하셨지? ㅠㅠ 덕분에 쌀국수로 속을 달랠 수 있었다.
화창해 보이지만 매우 무더운 날씨
일지매님!
이화령 정상 도착

맛이 가기 시작한 자전거. 아우터로 안넘어간다.

자봉분께서 찍어준 완주 사진인데 체인 상태를 보면 어휴 ㅠㅠ

1500K를 달리는 동안, 아들이 첫 뒤집기를 성공했다며 영상을 보내줬다!! 그 자리에 없어서 미안하다. ㅠㅠ

 

 

 

비하인드 스토리

 

신정교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신 분 안녕하신가요? 설마 다리 밑이 새들의 안식처인 줄 생각치 몰랐습니다. 5일 내내 똥을 맞아 차 한 쪽이 완전 똥범벅 돼서, 아침 해가 뜨고 휴게소나 고속도로에서 저를 추월해 가는 운전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상당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 혹시 다음에 이곳에 주차할 일이 있으면 다리 밑은 피해야 할 것 같네요~ 아래는 혐짤 주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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